[영화로 보는 경제] 나폴레옹은 여성 인권을 100년 퇴보시켰다
[영화로 보는 경제] 나폴레옹은 여성 인권을 100년 퇴보시켰다
  • 김성화 기자
  • 승인 2021.03.25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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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폴레옹의 연인'…나폴레옹의 인간적인(?) 면모의 재발견
데자레, 조세핀, 마리나, 마리 등 나폴레옹의 연인들…사랑일까 소유일까
나폴레옹 법전 "남녀 간 위계적 질서 법적 명문화"…여성 경제활동의 제약
산업화 이후로까지 이어진 성별적 위계…"여성에겐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가 필요"
나폴레옹의 연인 (N.: Napoleon & Me, N (Io e Napoleone), 2006)
감독: 파올로 비르지
출연: 다니엘 오떼유(나폴레옹), 엘리오 제르마노(마티노), 모니카 벨루치(에밀리아), 사브리나 임파치아토레(디아만티나)
별점: ★★ - 현저히 부족한 이야기와 플롯… - 

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 차라리 그를 쏴 버렸어야 했다. 처음 마음가짐을 단호하게 지켰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런 수모를 겪지 않아도 됐을텐데. 내 신념이 무너진 것과 함께 내가 사랑하는 여인마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죽이고자 했던 사람에게 뺏긴 심정을 누가 알아 줄 수 있겠는가. 한 평생 황제라는 남자의 그늘 속에서 살아갈 저 여인을 원망하기보다는 차라리 먼저 손을 쓰지 못한 나를 원망하는 게 나을 것이다.

자유와 평등, 박애란 프랑스 혁명의 기조 속에서 등장한 나폴레옹은 나름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나 봅니다. ‘나폴레옹의 연인’은 전쟁으로 많은 군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나폴레옹을 죽이려한 마티노가 서기로 일하면서 이전과 다른 나폴레옹의 이면적 모습을 발견한다는 내용입니다.

영화에 등장한 나폴레옹은 단순히 한 나라에 군림하고 통치자로서의 모습만 가진건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처럼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고민을 안고 살고 있으며, 스스럼 없이 농담도 할 줄 아는 인물이었습니다. 또 그렇게 고귀함을 추구한 인물도 아닌 세속적인 면모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에게 헌정하기 위해 3번 교향곡을 작곡했지만 나폴레옹이 황제에 오르자 그 세속성에 곡의 이름을 '보나파르트'에서 '영웅'으로 고쳤다고 합니다.

특히 그 세속적인 면은, 물론 그러지 않을 남자들이 드물 거 같지만, 모니카 벨루치가 연기한 에밀리아 남작부인에게 한 눈에 반하고 그녀와 함께 엘바섬을 탈출하는 장면에서도 여실히 나타납니다. 나폴레옹이 사랑한 여인은 에밀리아 뿐만이 아닙니다. 첫사랑인 데자레나, 그의 연인으로 가장 유명한 조세핀, 다른 사람의 아내였던 마리아, 전략적 관계로 시작한 마리까지.

어쩌면 그의 열등감이 남성 우월주의를 포기할 수 없게 했을지도 사진=다음영화
어쩌면 그의 열등감이 남성 우월주의를 포기할 수 없게 했을지도 사진=다음영화

작은 키와 코르시카란 작은 섬 출신이라는 열등감을 버리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사랑을 찾아 다녔던 나폴레옹의 여성관은 어땠을까요? 한 마디로 정리하면 기존 사회 남성 우월주의는 버리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단적으로 말하기 힘들지만, 그가 황제라는 위치에서 세운 제도들은 사랑보다는 소유로서 여성들을 대하고 있습니다.

1804년 나폴레옹의 명으로 제정된 나폴레옹 법전은 민법과 상법, 형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등 다섯 개로 분류되며, 로마법과 함께 현대 법 제도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내용은 민법 중 ‘아내는 남편과 함께 살며, 거주하기에 적당하다고 판단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가야 할 의무가 있다’거나 ‘남편은 아내를 보호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 부분입니다. 나폴레옹 법전은 프랑스 남성과 여성의 위계적 질서를 법적으로 굳혔고, 여성들은 남편 또는 아버지와 같은 남성 후견인의 허락 없이 가정 외부에서 직업을 얻어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사실상 가정 내부로 국한됨을 의미합니다.

한국불어불문학회의 ‘프랑스 노동시장에서의 성적 불평등 요소와 그 영향’은 “1804년 나폴레옹 민법전은 시민으로서 여성의 권리를 축소한 반면 남성에게는 강력한 부권을 인정함으로써 남녀 간 위계적 질서를 법적으로 명문화”했고 “남녀 역할분리의 이데올로기를 극대화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부와 어머니로서의 여성을 역할을 미화”했다고 말합니다.

칼 마르크스의 사상은 여러모로 영향을 끼쳤지만 ‘생산수단’을 강조했다는 점이 인상 깊습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는 생산수단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산업화 이전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은 ‘노동력’입니다. 원시시대 수렵부터 시작해 중세 농경사회까지, 이왕이면 강한 힘으로, 더 오래 노동력을 쏟아낼 수 있는 남성의 능력이 중요했습니다.

영화 속 에밀리아는 마티노와 연인처럼 보이지만 결국 남성을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닐 수밖에 없는 여성입니다. 사진=다음영화
영화 속 에밀리아는 결국 남성을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닐 수밖에 없는 여성입니다. 사진=다음영화

산업화는 이런 제약을 다소 해소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농경사회에서 일치됐던 노동과 거주공간이 분리되고, 기계의 사용은 여성 또한 남성과 같은 생산력을 보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만 산업화는 가사와 자본시장노동을 구분하고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좀 더 명확히 한 측면도 있습니다.

어쨌든 강조하고 싶은 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이전보다 활발해질 수 있었던 건, 인식의 변화 이전에 생산수단의 변화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와 함께 여성 권리 또한 향상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성 인권이 그간 향상돼 온 이유는 IMF 외환위기 이후 남성 홀로 가정을 부양할 수 없게 되면서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이 올라가고, 더 이상 시장에서 요구하는 생산능력이 신체적 노동력 중심이 아니란 점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아직 산업화가 찾아오지 않은 시점이라서 일까요. 자유, 평등, 박애의 프랑스 혁명 기조는 여성을 빗겨 갔습니다. 프랑스에서 성인남성에게는 1792년 프랑스 혁명 직후 선거권이 주어진 반면, 여성은 1944년으로 약 150년이 후에나 가능했습니다. 올랭프 드 구즈는 ‘여성과 여성시민의 권리 선언’을 발표하며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으므로 연단 위에 오를 권리도 가져야 한다”고 피력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주장은 1793년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무엇이 먼저라 말할 수 없지만, 여성의 경제력이 남성과 같다면 올랭프 드 구즈는 그렇게 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나폴레옹 시대에 나온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당시 여성 경제력의 또 다른 한계를 보여줍니다. 오만과 편견은 베넷 일가 딸들의 배우자 찾기가 주된 내용입니다. 당시 영국 사회는 장자 상속이 원칙이었고 이외 남성과 여성은 매우 미미한 재산만 물려 받았습니다. 여기서 여성의 가치는 결혼 시 가져갈 수 있는 지참금으로 결정이 됩니다. 우리나라 또한 조선시대 종법제와 장자 상속제가 굳어지며 여성의 지위가 현격히 낮아 졌다는 것과 연관 지어 생각해볼만 합니다.

버지니아 울프를 다룬 개인적인 강추 영화 'The Hours'. 사진=IMDb
버지니아 울프를 다룬 개인적인 강추 영화 'The Hours'. 사진=IMDb

나폴레옹 사후 60년 무렵에 태어난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을 통해,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선 자기만의 방 하나와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고자 하는 건,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를 달라는 게 아닌, 여성이 이를 스스로 가져갈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의 문제였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사람에게 전부는 아닙니다. 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또 다른 권리를 쟁취하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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