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표·말표 '레트로', 오늘의 당신을 위로합니다"
"곰표·말표 '레트로', 오늘의 당신을 위로합니다"
  • 이진휘 기자
  • 승인 2020.10.22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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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마케팅으로 대표되는 곰표 밀맥주(왼쪽)과 말표 흑맥주(오른쪽). 사진=BGF리테일
레트로 마케팅으로 대표되는 곰표 밀맥주(왼쪽)과 말표 흑맥주(오른쪽). 사진=BGF리테일

톱데일리 이진휘 기자 = “이러한 때, 기억 – 지금 내가 있는 곳에 대한 기억이 아니고 지난날 내가 산 적이 있는 곳, 또는 가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두세 곳의 기억 - 이 천상의 구원처럼 내게 내려와 혼자서는 빠져나올 수 없는 허무로부터 나를 건져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되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한순간을 간직하고 있다. 떠올리기 만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순간이 있다. 지금이라도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돌아갈 수 없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은 레트로 마케팅을 정확히 설명해준다. “과거는 우리의 의식이 닿지 않는 아주 먼 곳, 우리가 전혀 의심해 볼 수도 없는 물질적 대상 안에 숨어 있다.”

밀가루 봉지에나 그려져 있던 곰표가 이제는 맥주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구두약에서 보이던 말표도 맥주를 팔기 위해 나섰다. 프루스트에게 홍차와 마들렌이 있다면 우리에겐 곰표와 말표가 있다. 또 레트로 열풍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유독 뜨거워졌다. 과거 추억의 빵을 모은 신세계푸드 ‘레트로몽땅‘, 동서식품 ‘맥심 커피믹스 레트로 에디션‘, 일화 ‘맥콜 슬리퍼‘, 사조대림 ‘해표 식용유‘ 등도 모두 코로나19 공포가 한창이던 지난 4월에 출시한 상품이다.

(왼쪽부터) 신세계푸드 레트로몽땅, 동서식품 맥심 커피믹스, 일화 맥콜 슬리퍼, 사조대림 해표 식용유.
(왼쪽부터)신세계푸드 레트로몽땅, 동서식품 맥심 커피믹스, 일화 맥콜 슬리퍼, 사조대림 해표 식용유. 사진=각 사 홈페이지

곰표와 말표가 많은 대중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는 건 뜬금없기는 하다. 대한제분은 곰표 상표를 1955년 처음 등록됐다. 전후 먹을 게 없어 쌀은 커녕 밀가루라도 있어 무엇이라도 해먹을 수 있다면 다행이던 시절에 나온 상표다.

물론 전후 시기로 끝난 건 아니다. 우리나라 1인당 밀가루 소비량은 1965년 11.5㎏에서 1980년 38.4㎏까지 꾸준히 성장했다. 이 시기는 비록 당장은 어려울지라도 희망이 있던 시기였다. 1963년부터 1997년 IMF 외환위기 직전까지,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1980년 오일쇼크를 제외하고는 5%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개최까지, 우리나라에 다시 오기 힘든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지금은 어떤가. 취업도, 결혼도, 육아도, 내 집 마련도, 노후대비도. 무엇하나 확실한 게 없다. 레트로 마케팅은 기본적으로 이렇게 현실에 대한 불안감이 짙은 시기에 먹혀든다.

레트로는 영어 ‘Retrospect’의 줄임말로 ‘과거를 그리워해 그것을 본뜨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왜 과거의 것을 그리워하는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지각하면 과거를 떠올리고 그 때의 좋은 기억으로 현재를 위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 “레트로가 각광받는 이유는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에서 과거는 친밀하고 그리워할 대상으로 인지되기 때문이다.”(임현숙 세명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 '감성소비시대의 레트로디자인 현상에 관한 연구')

레트로 마케팅은 이 부분이 중요하다. 과거의 추억 이면엔 미래에 대한 불안, 새롭고 낯선 것에 대한 불안,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불만이 존재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어김없이 레트로 마케팅이 등장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삼성전자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를 모델로 내세웠고, 1970년대 만화영화 주제곡과 국민 체조가 광고에 나왔다.

진로이즈백. 사진=하이트진로
진로이즈백. 사진=하이트진로

또 지난 2012년 CJ제일제당은 1970년대 경양식 추억의 돈까스 맛을 재현한 ‘남산N왕돈까스‘를 출시해 6개월 만에 매출 2억원을 기록했고, 1970년대 제품을 재구성한 하이트진로 '진로이즈백'은 지난해 4월 출시 후 올해 5월 말까지 13개월 동안 3억병이 판매됐다. 글로벌 경제 재정위기와 미중 무역전쟁이 우리를 덮치며 불안감이 높아지던 시기다.

레트로 마케팅은 작은 소비 하나로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해 주는 ‘디스트레스(destress) 마케팅’의 대표적인 방법이다. 스티브 브라운 교수는 자신의 논문 ‘레트로 마케팅(Retro-marketing)’에서 “우리는 소비자가 합리적이라고 가정하지만 소비자는 합리적이지도 않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정확히 모를 때가 많다”며 “하나의 상품을 구매하더라도 현재의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과거의 좋았던 경험을 향유하고 이를 통해 즐거움을 얻고 싶어 한다“고 지적했다.

레트로는 단순히 회귀만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비싼 돈을 주고 좋은 제품을 쓰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당신을 충족시켜 준다. 이제는 소비를 하더라도 감성적으로 소비한다. 애플이 괜히 잘 나가는 게 아니다.

특히 레트로는 인간의 감성 중 ‘노스텔지어’를 자극하고 이를 심리학에선 ‘향수정서 자극의 법칙‘이라 부른다. 과거를 떠올리면 힘들었던 시간은 포장되고 좋은 경험만 기억하려는 인간의 습성, ’무드셀라 증후군‘이다. 이는 나이가 많을수록 효과가 극대화 되고, 최근의 기억보다는 10대, 20대의 젊은 시절에 더욱 집중하는 ’회고 절정‘으로도 나타난다. 철학자 화이트헤드(Alfred N. Whitehead)는 “청춘의 특징은 좌절이며 비극이자 모호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절망“이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청춘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름답게 떠올릴 청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지 않은가.

청춘의 시기는 중요하다. 제임스 레이버 법칙은 ‘10년 전 패션은 저속하게 보이고, 20년 이전의 스타일은 고풍스럽고,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유행의 속성을 말한다. 지금 1970년대부터 1990년, 길게는 2000년까지의 유행이 다시금 떠오르는 건 현재 30~50대의 학창시절, 청춘의 시기와 맞물려 있다. 또 사이먼 레이놀즈(Simon Reynolds)는 레트로가 ‘언제나 비교적 가까운 과거를 가리킬 것’이라 한정 지었다.

지금의 청춘들이 이끌고 있는 뉴트로(New-tro)는 레트로와 또 다르다. 뉴트로 트렌드에 대해 호감을 나타낸 이유로 50대는 ‘추억’, ‘향수’, ‘그리움’을 30~40대는 ‘운치’, ‘친근함’을, 20대는‘신기함’, ‘모던’을 이유로 들었다. 현재 뉴트로는 MZ세대(15~34세)가 주요 타겟이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아동학과 교수는 “레트로 마케팅이 경제상황이 안좋을 때 과거의 향수를 되돌아보며 위안이 되는 역할을 하지만 MZ세대 입장에서는 전혀 다르게 읽힌다“며 “기성세대가 보기에 촌스러운 것들이 MZ세대에게는 낯설고 우스꽝스러운 B급 감성을 자극해 선호를 높인다“고 말했다.

B급이면 어떤가. 익숙한 디자인의 물건들이 눈에 들어온다면 지금 당신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당신의 손에 들린 레트로 제품 하나로 위안을 얻고 내일을 살아갈 힘이 보태진다면 과거로의 회귀를 얼마든지 응원하겠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왼쪽)과 응답하라 1988(오른쪽).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왼쪽)과 응답하라 1988(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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