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대학 노동자 휴게실, 그들에겐 "지하주차장도 감지덕지”
변하지 않는 대학 노동자 휴게실, 그들에겐 "지하주차장도 감지덕지”
  • 최종환 기자
  • 승인 2020.08.12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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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 대학, 고용부 지침 어기고 지하주차장에 휴게실 설치
노동자들, 자동차 소음 들으며 밥 먹고 휴식
서울대도 잡음 끊이지 않아… “협의해 개선할 것”
A 대학교 지하주차장 내 설치된 노동자 휴게실. 내부에는 TV와 환풍기 등이 설치됐지만, 안전과 편안함은 느낄 수 없었다.
A 대학교 지하주차장 내 설치된 노동자 휴게실. 내부에는 TV와 환풍기 등이 설치됐지만, 안전과 편안함은 느낄 수 없었다.

톱데일리 최종환 기자 = 정부의 사업장 휴게 시설 가이드 지침 권고에도 대학들은 이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톱데일리 취재결과 확인됐다.

기자는 11일 서울의 A 대학교 내 노동자 휴게실을 돌아봤다. 전날까지 폭우가 쏟아져 학교 곳곳에는 습한 기운이 감돌았다.

지하주차장 입구를 들어서자 케케묵은 냄새가 기자를 반겼다. 바닥에는 기름때가 묻었고, 빗물이 마르지 않아 이동 중 부상 위험이 존재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안내판만 있을 뿐 이곳이 휴게 공간인지, 창고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직원들은 어두컴컴한 지하주차장 한 켠에 마련된 조그마한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내부에는 TV와 환풍기 등이 보였지만, 안전과 편안함은 느낄 수 없었다.

 

지하휴게실이라도 없어질까 걱정 앞서

기자 생각과 달리 직원들은 이 휴게실이라도 감지덕지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지하휴게실 문제가 공론화될 경우 학교측과 관계가 껄끄러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있었다.

학교에서 경비 업무를 하는 직원 B 씨는 “일을 하다 피곤하면 잠시나마 쉴 수 있는 공간이다”며 “TV를 보거나, 식사를 할 때도 있다. 불편하지만, 지상에 휴게실을 마련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고 했다.

기자가 현장에서 한 시간가량 머무는 동안 분(分) 단위로 수 십대의 차량이 오갔다. 안내 벨과 경적이 울리면 귀가 멍해졌지만, 직원들은 ‘참을 만하다’는 반응이다. 지하 공간에 익숙해진 탓이다.

직원 C 씨는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게 불편하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둡고, 환풍이 제대로 안 돼서 문제긴 하지만, 잠시 있을 뿐이다”며 “코로나19 때문에 위생 문제는 서로 조심하자는 분위기다”고 설명했다.

지하주차장 내 휴게실 설치는 정부 지침과 정면 배치된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018년 내놓은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 운영 가이드’를 보면, 노동자 휴게실은 작업 및 위험 반경에서 분리된 곳에 설치해야 한다. 사업주는 노동자의 충분한 쉴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예를 들어, 1인당 면적은 의자·탁자 등을 포함해 1㎡, 최소 전체면적 6㎡ 이상 확보하고, 적정온도(여름철) 20~28℃를 유지해야 한다. 소음 허용 기준은 50db 이하다.

이 휴게실에서는 해당 사항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기자가 휴게실 주변 소음을 측정한 결과 55~60db이 나왔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수준으로, 원칙대로라면 이 휴게실 운영은 ‘지침 위반’이다. 그러나, 고용노동부 매뉴얼은 권고 수준에 머물 뿐 위반에 따른 제재가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 서울대마저… “대학 불평등 심해”

학내 휴게실은 국립대인 서울대학교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앞서 서울대에서 일하던 한 청소 노동자는 지난해 8월 교내 직원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휴게실은 창문이나 에어컨이 없어 환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계단 밑에 마련된 임시 공간인 것으로 드러났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서울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교내 청소 노동자 휴게실 146개소 가운데 ▲ 지하휴게실 23개소 ▲ 계단 하부 휴게실 12개소 ▲ 냉·난방기 미설치 33개소 ▲ 환기설비 미설치 26개소에 달했다.

하지만, 휴게실 실태가 공론화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환경 개선을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대 내 건물 총 166곳 중 76곳(48.4%)에 휴게실이 없었다. 상당수 노동자들은 쉬기 위해 다른 건물로 이동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앞서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은 지난 10일 본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 휴게실 개선을 촉구했다.

정우준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는 “노동자의 죽음은 한 노동자에게 닥친 불행이 아니다”며 “위험은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오고, 경제적·사회적으로 가장 불평등한 그곳에서 사망이라는 끔찍한 결과로 나타난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학교측은 기자회견 후 단체와 대책 논의는 없다고 하면서도, 휴게실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을 약속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톱데일리와 통화에서 “현실적으로 모든 건물에 휴게실을 설치할 수 없다”며 “휴게실 배치는 건물 사정을 고려해 유동적으로 하고 있다. 노동자들과 협의해 문제를 개선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은 지난 10일 서울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 휴게실 개선을 촉구했다(사진=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제공).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은 지난 10일 서울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 휴게실 개선을 촉구했다(사진=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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