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톱데일리 최은지 기자] 광복절 전날인 오늘(14)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이다. 현재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총 27명, 평균 나이 91세다. 이들이 고령과 병마로 시간과 싸우며 버티고 있는 중에도 한국 정부가 약속한 ‘화해·치유재단’ 거취 문제는 3년 째 제자리걸음이다.
박근혜 정부가 만든 ‘화해·치유재단’은 ‘2015한·일 합의’에 따라 위안부 피해 생존자에 1억 원을, 사망자 유족에 2000만 원을 지급해왔다. 문제는 이 돈이 일본 정부로부터 위로·합의금 명목으로 받은 10억엔(110억 원)이라는 점이다. 당사자 동의 없이 현금 지급을 강행한다는 논란이 제기되자 문재인 정부는 지난 1월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고 10억엔을 한국 정부 예산으로 채우겠다”고 말하며 후속조치를 선언했다.

그러나 7개월 동안 진전된 건 없었다. 지난달 24일 ‘10억엔을 대체하기 위한 예비비 지출안’만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재단은 해산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사무실 임대료, 인건비 등을 반환돼야 할 10억엔에서 충당하고 있었다. 재단이 해체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운영비는 정부 예비비로 메워질 것이고 ‘세금낭비’란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현재 화해·치유재단엔 당연직 이사 3명(사무처장, 외교부 동북아시아국장, 여가부 권익증진국장)을 비롯해 직원 5명이 근무 중이다. 나머지 이사 8명은 지난해 사의를 표명했다. 사실상 재단의 업무는 중단된 상태다. 재단 이사회는 2017년 12월28일 19차 회의를 끝으로 올해 열리지 않았으며,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현금지급 사업도 올해 1월 이후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지난달 29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성가족부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를 보면, 이들은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인건비 1억1400만 원, 관리운영비 5100만 원 등 모두 1억6500만원을 사용했다. 직원급여·사무실 임대료 등으로 월 평균 2750만 원을 사용했다. 지난달 기준으로 재단에 남은 돈은 약 61억 원이다. 이에 일본 측은 합의금으로 준 돈의 절반을 대한민국이 사용했으니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월 나가미네 주한 일본대사는 “(우리가) 10억엔을 냈으니 한국은 제대로 성의를 보이라”고 말한 바 있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대표는 “이전 정부가 잘못 설립한 재단이지만, 해산 과정에서 현 정부의 후속조치가 너무도 더디다”고 말했다. 정의연은 민법 제 77조에 의거해 ‘설립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법인에 대해 설립취소 조치가 가능하다’는 점을 여가부에 지속적으로 전달했다.
이에 정현백 여가부 장관은 ‘해산에 대한 법적 검토 중’이란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전체회의 자리에 출석한 정 장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비가 지출된 건 사실로 확인됐다. 운영비 절감을 위해 재단 사무실도 3분의 1로 축소 조치했다”면서도 “(해산 계획에 있어선) 현재 이사 3명만 남아있어 결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관에 따르면 이사회가 재적이사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해 여가부 장관이 승인할 때 재단을 해산할 수 있다. 여가부는 ‘이사 결원 시 사임으로 인해 퇴임한 이사는 새로운 이사가 취임할 때까지 이사의 권리의무가 있다’는 상법 조항(제386조)을 들며 현재 의결권 행사에 필요한 최소 인원(5명)에 미달하기 어려워 해산 조치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연희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사무총장은 “재단은 설립 존재부터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전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설립됐고 지난해 6월 이후 1년 이상 운영이 중단돼 목적사업을 진행하지 못했다”며 “이는 ‘공익법인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제16조’에 따라 설립허가의 취소 사유가 충분히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이사장이 사퇴했고, 12월엔 이사진 전원이 사퇴해 활동을 사실상 중단했기 때문이다. 정의연은 지난달 24일 이런 내용을 여가부에 전달했지만 여가부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윤미향 정의연 대표는 “‘한·일 합의’가 이루어진 2015년 12월 27일 이후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평창 유치’ 등 굵직한 사건이 터져 화해·치유재단 해산 문제는 국민들 뇌리 속에서 사라진 게 사실”이라며 “‘화해’ ‘치유’란 표현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내걸 수 있는 것이지 가해국 일본이나 정부가 거론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표는 “얼마 안 남은 생존 할머니들을 위해서라도 정부가 ‘공익법인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제16조’처럼 해산할 수 있는 법적 조치를 하루빨리 취해야 한다”면서 “화해·치유재단의 해체를 시작으로 위안부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우리 정부가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