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이면 합의 "이완용보다 더한 박근혜"
위안부 이면 합의 "이완용보다 더한 박근혜"
  • 장성수 기자
  • 승인 2017.12.28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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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를 두고 일본과 이면합의를 한 것에 대해 이완용보다 더한 박근혜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사실 이 보다 더 심한 말도 나온다. 특히 촛불집회 이후 갈아앉은 분노는 다시 불 붙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위안부 이면합의에 대해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일본과의 관계는 이제 회복 불가능하게 됐다. 명분은 국민들의 합의 하에 결정되지 못한 사안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일본은 즉각 항의했다. 대통령은 국민들이 뽑은 것인데, 이미 국민을 대표로 하는 대통령이 내린 결정을 번복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즉 불가역적인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오히려 더 단호하게 "유감스럽지만 피해갈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 위안부 이면합의가 말이 되는가? 위안부에 끌여가 고통받았던 당시 피해자들은 일본의 그 어떤 사과와 사죄의 말도 못 들은 상태다. 푼 돈 몇 푼 받고 해결하거나 합의할 사안이 아니다. 일본인들이 석고대죄를 한다해도 그 사과를 받아줄까 말까한 사안이다.

피해할머니들은 당시의 치욕에 대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들은 아직도 꼬박 20년동안 일년에 쉰두번 매주 수요일마다 집회를 연다. 비록 할머니들은 가느다란 목소리로 "일본놈들, 그 놈들이 한 짓을 어떻게 잊냐. 잊을 수 없다. 사과와 사죄를 ㅂ골백번도 더 해야할 일이지만, 이렇게 집회에 나와서 사죄하라고 촉구해도 무응답이다.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게 바로 일본인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본군인들이 무작적 할머니들을 트럭에 실었다. 이유는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말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그 이후 죽지 못해 살거나 아니면 죽거나를 반복한 이들이 태반이었다. 그때 피해 할머니들의 나이는 겨우 열여섯이었다. 꽃다운 나이에 피해 할머니들은 무참히 짓밟혔다. 전쟁이 끝나도 집으로 갈 수 없었다. 그리고 평생을 혼자 숨어 살아야만 했다.

일본 위안부의 만행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할머니들은 이렇게 증언했다.

"여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살아 있되 죽어 있는 사람이었다고."

그러나 일본은 달랐다. 이런 생생한 증언에도 불구하고 1990년 6월, 일본 정부나 군이 관여는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피해자의 명단도, 단서도 없다고 덧붙인다. 피해자들의 증언이 여전한데도 불구하고, 일본의 태도는 사과보다 그저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단정지어 버렸다. 이후 피해 할머니들의 분노는 더 극에 달했고, 그들의 만행을 자세히 아주 자세히 세상에 알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피해 할머니들은 더 이상 굴욕을 피하기 위해 나섰다.

그렇게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상태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런 피해 할머나들을 위로는 못할망정 오히려 더 억울하게 만들었다.

다시 촛불집회의 때처럼 국민들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유엔 인권단체 한 관계자는 한국에 와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상태를 확인하고 일시적인 석방을 얘기했다. 인권 침해라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피해 당사자와 국민이 배제된 정치적 합의였다는 점에서 매우 뼈아프다"며 "현실로 확인된 비공개 합의의 존재는 국민에게 큰 실망을 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또 한 번 상처를 받았을 위안부 피해자 여러분께 마음으로부터 깊은 위로를 전한다"고 덧붙였다.

감히 누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살이를 인권침해로 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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